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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f처: 지금까지 살면서 엄청 충격적이었던 체험 143번째(일본어)

233:NoName: 2016/07/16(토) 00:00:54.93
나 개인적으로는 엄청 충격적이었던 체험.
남한테 말한 적 없는데 왠지 생각나서 썰 품

중2때 '슬레이어즈'를 읽고 라노베*에 푹 빠짐.
(*역주: 라이트 노벨Light Novel. 일본 장르소설.)
나도 소설가가 되고싶다고 간절히 바라며
투고할 작품의 설정과 줄거리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까 '되고 싶다'는 '당연히 될 수 있을거다'로 바뀌었고,
거기서 '나를 제쳐두고 현역으로 뛰고있는 라노베 작가들은 미숙하다'진화했으며,
결국엔 '미숙한 놈들이 판치는 라노베 업계는 썩었다'로 숙성됐다.

요즘같으면 인터넷에서 중2병이라고 일침맞고 정신차리거나,
아니면 반대로 '내가 생각해낸 엄청난 설정'을 인터넷에 공개하곤
까여서 가루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을듯.
근데 당시엔 그런 게 없었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중2병도 함께 익어감.

중2병이 든 냄비는 5년 동안 계속 끓었음.
나는 5년간 투고작 설정과 줄거리만 계속 가다듬음.
항간의 바보들을 훅 하고 날려버릴 대걸작을 계속 갈고닦음.
레알로 5년동안.
5년 동안에 슬레이어즈는 1부가 완결됐는데.
그런 5년동안 난 본문은 한 글자도 안쓰고
그냥 설정과 플롯만 완벽하게 만들어갔다.
이때쯤 인터넷이 있었다면
그게 글러먹은 투고자의 전형적 행태란 걸 알았을지도.

그러나 역시 아직 세상에 인터넷은 없었음.
설정과 줄거리는 완벽하니까, 본문을 쓰는 것만 남았으니,
나는 이 위대한 걸작이 이미 완성 직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라노베란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믿었다.

234:NoName: 2016/07/16(토) 00:01:15.66
중2였던 나는 대학교 1학년이 됐다.
대학 생활은 생각보다도 비정상적으로 한가했다.
나는 이 틈을 타 드디어 "본문"을 쓰기 시작했고,

석 달도 안 돼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니다, 돌아왔다기보단 제정신이 '됐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의 3개월간에 대해선
그닥 자세히 쓰고 싶지 않지만, 엄청 충격적이었다.
5년간 숙성시킨 멋진 다크히어로는 그냥 개새끼였다.
5년간 숙성시킨 영혼의 외침은 추한 적반하장이었다.
자기가 의기양양하게 써내려간 캐릭터의 말과 행동에
자기가 밥맛이 떨어진다는 희귀한 경험이었음.
'슬레이어즈 3권에 나오는 바보 기사조차도
이렇게까지 바보는 아니겠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식겁했다.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는 재활훈련이 있다던데,
그거 아마 완전 효과있을 듯.

돌이켜보면 5년 3개월에 걸쳐 작성한 투고작은
기적적으로 완성돼서 당초 예정대로 응모했다.
그 시점에서 이미 내 심정은 "......"가 다였다.
'용케 완성까지 썼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차 탈락했다.

대학을 안 갔다면, 또는 대학생활이 좀 더 바빴다면
난 그때 본문을 쓰지 않았겠지.
그랬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237:NoName: 2016/07/16(토) 00:21:29.18
끝까지 써서 투고까지 한게 훌륭해~
1차 탈락이라도 인생공부가 됐을듯.

238:NoName: 2016/07/16(토) 00:34:29.90
응. 완성시키다니 대단해.
사람들은 대부분 속에서 숙성만 시키는걸로 끝이거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님의 상상대로임.

cnf처: 지금까지 살면서 엄청 충격적이었던 체험 143번째(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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