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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금까지 있었던 아수라장을 말하라[26번째](일본어)

488: NoName: 18/12/19(수) 19:06:00 ID:u1t
20대 중반 때 약혼자를 친구에게 뺐겼다.

양가 상견례도 했고, 약혼식까지 절차대로 마친 상태였다.
청첩장도 만들었고, 피로연 장소도 거의 다 결정된 단계였다.

약혼자와 예비 시부모님의 의향에 따라 퇴직도 했다.
예비시댁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서
거기서 일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런 단계에, 갑자기 우리집에
내 약혼자가 내 절친과 함께 나타나서
현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결혼을 백지화해주셨으면 합니다.
ㅇㅇ(나)와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녀(친구)의 뱃속에는 아기가 (어쩌구저쩌구)!!"

약혼자의 아버지는 "아들을 어떻게든 설득할테니
이대로 결혼식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고.

피로연에 약혼자 아버지가 자랑하는
중요한 인맥들을 많이 초대했기 때문에.
"혼인신고만 안 하면 되니까,
이혼할거면 일단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라나.

남친과는 중학교 때부터 10년을 사귀었고,
대학 시절엔 원거리 연애까지 극복해서
이제야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했었는데 충격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내 절친이라서 더 괴로웠다.

너무 괴로워서 죽고싶다는 생각에
아파트 꼭대기층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역에 들어오는 지하철에 뛰어들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죽을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고향 현지에 있기는 괴롭고.

엄마와 나이터울이 많이 나는 여동생이
독신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옛날부터 언니를 잘 따르던 이모에게
몸을 의탁하기로 하고 고향을 떠났다.

489: NoName: 18/12/19(수) 19:06:10 ID:u1t
그곳에서 본 이모의 삶의 방식이 너무 쿨하고 멋있어서
숙모를 롤모델삼아 일하는 동안
마음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고,
30살 넘어서긴 하지만 지금의 남편과 만나서 결혼했다.
애도 둘 낳았다.
그래도 고향에 돌아가면 괴로웠던 기억이 되살아나니까
부모님이 이쪽에 방문하시긴 해도
내가 먼저 고향에 가진 않았다.

그러나 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더니
조문객 중에 전남친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무슨 낮짝으로 나타났담?'이란 생각은 안 들었다.
이제 모든 게 과거지사라는 여유로운 기분조차 들었다.
남편에겐 내 과거얘기는 다 했다.
남편에게 부탁하고 잠깐 자리를 바꿔서 전남친과 얘기했다.

전남친은 첫마디부터 다시한번 그때 일을 사죄했다.
그리곤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내 쪽은 분명 천벌이 내린 거겠지"라고.
그 말만 하고 돌아갔다.
'천벌받았다'란 말이 궁금해서 장례식 후 엄마에게 물어봤다.
같은 지역 사람이니까, 엄마한테도 여러가지 얘기가 들려온다.

친구는 사산했다고.
게다가 그 후 암에 걸려 오랫동안 전이를 반복하다가
몇 년 전에 죽었다.
부모님과는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의절당한 상태.
거기까지 떨어졌으면 확실히 '천벌받았다' 소리가 나오겠네.
그건 그렇고, 그렇게까지 비참한 상황이라면
나는 더더욱 고향엔 두번다시 돌아가기 싫은듯.
엄마한텐 죄송하지만.

출처: 지금까지 있었던 아수라장을 말하라[26번째](일본어)

'중요한 인맥' 앞에서 쪽팔기 싫다는걸 이유로
실제 성사는 안 될게 뻔한 결혼식을 올려달라고요?
남의 집 귀한 딸까지 끌어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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