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줌마의 해외 익명 막장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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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내가 우리 아들을 반쯤 죽이는 현장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해줘서 기뻤어요.


미리 말해두건데, 엄청 깁니다. 그 점은 사과할게요. 하지만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제게 있어 매우 괴로운 일이었고, 아주 오랜 세월동안 마음에 품어온 짐이었습니다. 제 심리상담사는 이걸 글로 써서 감정을 토해내 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는 레딧에 올리란 조언은 안 했지만, 저로선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던 사건인지라,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듣고 싶네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전 아직도 이 일에 대해 제가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으니, 여기 올려서 대중들의 평가를 들어볼게요. 저도 몇가지 잘못한 게 있단 걸 스스로도 압니다. 어쩌면 많은 걸 잘못했을지도 모르죠. 저로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제 아들은 매우 말썽쟁이였습니다. 매우 말썽쟁이였습니다. 혹시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란 영화를 보셨다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겁니다. 왜냐하면, 신에게 맹세컨데, 전 그 영화를 봤을 때 제 인생을 다큐멘터리로 찍었나 했거든요. 어찌나 정확한 내용이었던지, 대본 작가가 우리집에 몰래카메라라도 설치했나 했어요.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그 영화 속 애는 아빠 앞에선 정상인인 척 했지만, 우리 아들한텐 그런 가면이 없었어요. 아들의 미친짓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타났습니다.

아들은 태어난 날부터 잘못된 아이였습니다. 계획임신이었고, 우리 부부는 아이의 탄생에 환호했어요. 원해서 낳은, 사랑받은 아이였습니다. 우린 아이에게 애정을 쏟아부었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선사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데려온 그 날부터, 아들은 비통해했어요. 13개월을 내리 울어댔습니다. 과장하는 게 아닙니다. 13개월동안 한시도 쉬지않고 울어댔다구요. 목소리가 안 나와도 계속 울어댔습니다. 그 작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목쉰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안 나왔죠. 어떨땐 진짜로 자면서도 울었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 아기가 있다곤 듣도보도 못 했어요. 우린 아들을 의사한테도 데려가보고, 먹이는 걸 바꿔도 보고, 안아도 보고, 얼러보고, 장난감도 줘 보고, 천으로 싸매보고, 음악, 모빌,... 생각나는 건 죄다 시도해봤습니다. 그 무엇도 소용없었죠. 이 갈기, 삐걱거림, 잠 못자기 지옥이 13달동안 이어졌습니다.

울기 단계를 지났을 땐 한시름 놓은 줄 알았죠. 근데 얼마 안 가서 명백해진 사실은, 대관절 어째서인지 아들은 자기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진심으로 기쁜 미소를 짓는 걸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힘들게 혹은 고통스럽게 만들거나 규칙을 어길 때 흉폭하고 끔찍하게 씨익 웃는 거라면 여러 번 봤죠. 근데, 뭔가 좋은 것에 대한 진심어린 미소요? 아니오, 전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들은 긍정적인 것들엔 일절 관심이 없었습니다. 증오만이 아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연료이자, 아들의 모든 행동의 이유였습니다.

걸음마가 시작되자, 아들애의 인생목표는 물건 파괴였습니다. 손닿는 범위의 모든 걸 힘닿는 대로 부수거나, 부수려 시도하거나, 깨트리거나, 씹거나, 화장실에 던졌습니다. 얼마 후 아들은 기저귀 벗는 방법을 알아냈고, 몸이 닿는 모든 범위에 똥오줌을 바르는 데에서 큰 기쁨을 찾더군요. 얼마 후엔 그걸 감추는 방법을 터득했고, 우리가 발견하는 데에 한참 걸리는 장소에 똥오줌을 누기 시작했습니다. 혹은 더 치우기 힘들게 카펫에 발라서 집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게 만들었죠. 나이가 더 들자(9~15살), 우리 침대에 똥오줌을 눠대서 우리 부부는 아들이 못 들어가게 문에 잠금쇠를 달았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방 바로 앞 복도에 똥을 눠댔죠. 그 생화학병기는 두살 반에 시작되어, 마지막 날까지 계속됐습니다.

얘기하려고 들면 며칠 내내 얘기할 수도 있지만, 빨리 쓰겠습니다. 아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속수무책이 돼갔습니다. 자기한테 뭔가를 하려는 모든 사람을 물고, 걷어차고, 악쓰고, 할퀴고, 침을 뱉었습니다. 아홉살이 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두 번 쫒겨났고, 세번째로 다시 받아들였다가 또다시 쫒겨났을 땐 퇴학이었습니다. 전학가야만 했지요. 다음에 간 학교에선 아들은 특수반에 들어가 다른 학생들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아들이 식칼을 훔쳐다가 벽과 가구에 꽂거나, 그걸 들고 사람들을 쫒아다니는 통에 우리 부부는 부엌에 자물쇠를 달아야 했습니다. 아들이 열살 때 칼로 제 엉덩이를 꽤 깊이 찔러서, 제 엉덩이엔 아직도 흉터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들은 더 어두워졌습니다. 물건에 불을 지르고, 동네 동물들을 고문하는 걸로 옮겨갔지요. 우리 집 근처 공원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우리 아들이 바베큐 꼬치로 그 개의 한쪽 눈을 멀게 만들었지요. 고양이 꼬리를 가솔린에 담갔다가 불을 붙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아들은 난폭하고, 악취를 풍기고, 잔인한 짐승이 되었죠. 그것도 우리 집에 사는. 우리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보나마나 댓글로 엄청 물어볼테니 미리 답하겠습니다: , 아들애를 심리상담 받아보게 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았고, 정말이지 몇년간 정신과 약을 얼마나 많이 처방받았다구요. 그 무엇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심리상담은 소용없었어요. 약도 없었어요. 존나 그 무엇도 안 먹혔다구요. 증오와 분노로 만들어진, 닿는 모든 걸 부식시키는 독구름같은 아이였어요.

아들이 16살때, 아내가 또 임신했습니다. 우리 반응은 첫 임신때완 전혀 달랐습니다. 기쁨 대신 공포를 느꼈죠.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고, 어찌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아들이 16년간 그야말로 끝없는 악몽이었던지라, 그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낙태에 대한 의논도 많이 했는데, a) 당시는 지금처럼 낙태가 쉽지 않았고, b) 아내가 극력 반대했습니다. 우린 다른 여러가지 선택지도 고려했죠. 결국은, 아내가 애를 낳되, 이 아이도 사악하단 게 밝혀지면 입양보내자고 결정했죠. 우린 알고있었거든요, 우리 부부한텐 아들같은 애를 추가로 하나 더 키울 에너지가 없단 걸.

딸이었습니다. 정상이었어요. 우리 부부의 삶이 본래는 어땠었어야 했는지, 만약 우리 아들이 그 애가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갑자기 알게 됐어요. 딸애는 세상을 보곤 웃었습니다. 딸애는 물어뜯지 않고 젖을 빨았습니다(아직 이는 안 났지만, 그냥 먹고 싶은거랑 자기 엄마의 젖꼭지를 뜯어내려 시도하는 건 확연히 다르잖아요). 4개월이 지나자, 딸애는 밤새 잘 잤습니다. 딸애는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딸애는 정상이었어요. 저와 아내가 느낀 안도감과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시점부터 저는 아들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진, 비록 잘못된 선택은 하더라도, 전 늘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확실해요. 아들을 도와주려고, 사랑하려고, 돌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심으로 노력했어요. 그러나 딸이 태어나고 나니, 아내와 나는 본능적으로 그냥 딸 쪽만 향했죠. 딸애가 우리 관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아들에게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딸애가 훨씬 쉬웠으니까요. 딸애는 행복하고 사랑스러우며, 그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마법같았습니다. 이러면 안되는거 아는데, 솔직히 어쩔 수 없었어요. 이렇게밖에 설명을 못하겠네요.

아들은 아내의 임신엔 무관심했어요. 솔직히 그 아이가 임신이 뭔지 이해나 했는지조차 미스테리입니다. 근데 딸애를 병원에서 데려오자 아들은 더 보란듯이 난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더 심해지는 게 가능할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아들은 거기서 더 용을 쓰더군요. 17세 무렵, 우린 매일같이 서로에게 고막 터지게 사자후를 내질렀습니다. 싸우고 나면 아들은 곧잘 집 밖으로 뛰쳐나가 몇시간동안 안 돌아오거나, 아예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안심되더군요. 저는 한동안 아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싸움이 터지길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의 탄생 이후로, 저와 아들과의 관계는 거의 소멸되고, 서로에게 소리지르는 게 유일한 의사소통이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한술 더 떴습니다. 아들한텐 아무 애정도 안 남아있었죠. 그때쯤엔, 아들이 아내가 있는 방에 들어오기만 해도 아내는 하던 걸 무조건 멈추고 아들이 나갈 때까지 “내 눈앞에서 꺼져! 꺼지라고! 꺼지란말야 씨발!”이라고 소리질렀죠. 아들은 집 밖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한테는 축복이었죠. 바깥 세상에서 뭘 하고다녔는진 모르지만, 그 악영향이 우리한테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아들의 문제행동 때문에 우리 부부는 집의 문을 잠그는 데에 많은 예산을 할애했습니다. 싸고 얇은 인테리어용 문은 발로 걷어차도 쉽게 열리지 않는 두껍고, 조밀한 나무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에는 열쇠가 딸려있었고, 아내와 나는 열쇠를 가지고 다녔죠. 극단적인 조치란 건 저도 압니다만, 아들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데엔 자물쇠와 무거운 문이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으레 달릴 댓글에 미리 답하자면, 우리는 아들을 죄수처럼 감금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자유롭게 집안을 오고갈 수 있었어요. 집사람과 전 우리들 자신을 방에 감금시킴으로서 아들애로부터 자기 몸을 지켰습니다. 마치 우리가 자기 집에 감금된 죄수인 양 말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에 저와 아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아들은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딸아이가 우리 침실에서 낮잠자는 동안 우리 부부는 부엌에서 짧은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죠. 바로 그때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일단 아기 울음소리에 익숙해지면 알잖습니까? 배고플때랑, 기저귀 갈아야 할 때랑, 그냥 안아줬으면 할 때는 울음소리가 각각 다르단 걸요. 아기들이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의사표현을 퍽 잘 한단 말입니다. 근데 이번 울음소린 그 어떤 것도 아니었어요. 겁에 질린 울음이었습니다. 들린 순간 우리 부부는 의자에서 동시에 벌떡 일어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물론, 문은 잠겨있었고, 맞는 열쇠를 찾아 들어가는 데에 몇초쯤 걸렸습니다.

아들애가 방 안에 있었어요. 우린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그 씨발새끼는 창문으로 기어올라와 딸아이한테 접근한 겁니다. 손에 스테이크 나이프를 들고 요람 옆에 서 있었어요. 대체 그걸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우리 집 게 아닌 건 확실해요. 우리 부부는 날붙이는 반드시 잠긴 서랍 안에 두고 엄중하게 관리했거든요. 아마 이웃집에서 훔쳤지 싶은데. 그놈은 이미 딸아이의 피부를 두 번 베어놨습니다. 배에 한 번, 팔에 한 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방에 들어선 순간에 그놈은 아기 얼굴에 칼등을 문지르며, 베지는 않고 거의 간지럽히듯이 하면서, 앙앙 우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날 올려다보더니 미소지었죠.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뛰어가서 아들과 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죠.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런 저보다도 아내가 더 빨랐습니다. 무슨 빨리감기 영상 같았어요. 아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손의 나이프를 쳐냈고, 나이프는 방 한켠으로 날라갔습니다. 아내는 아들을 온 몸무게를 실어 밀어젖혔는데, 어찌나 세게 밀어붙였는지 아들은 요람에서 떨어져 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가 튕겨나왔습니다. 아내는 내가 딸애를 안아드는 걸 유심히 지켜봤죠. 딸아이는 몸을 떨다 못해 거의 경련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선명히 기억납니다. 방 안의 냄새, 내 딸이 비명지르며 목놓아 우는 소리. 거기 서있는 아들애의 표정. 무표정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처럼 텅 비고, 아무 감정도 안 담긴 눈. 내겐 아들이 무슨 외계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아들을 향해 한 발 다가섰습니다. 아내를 붙잡으려면 붙잡을 수 있었는데, 전 아내를 막지 않았어요. 아내는 재차 앞으로 나아가, 아들에게 매우 가까이 붙어섰습니다. 이번에도 말리려면 말릴 수 있었습니다. 근데 안 막았어요. 아내는 아들을 한 3~5초쯤 묵묵히 바라봤습니다. 그리곤 아들 얼굴에 펀치를 날렸어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 아내를 머릿속에서 그릴 때 평범한 여성을 그렸을지도 모르겠군요. 작은 몸집에, 얌전하고 섬세한. 아닙니다. 몸집은 작은 편 맞는데, 얌전하고 섬세했던 적은 없었어요. 집사람은 10대 초반엔 복싱을 했습니다. 당시엔 MMA가 존재하진 않았지만 가라테와 복싱은 대 유행이었으며, 아내는 그 중에서도 매우 재능있는 아마추어 선수였습니다. 몸무게는 60kg에, 근육도 있고, 펀치도 잘했습니다. 저야 당시 90kg쯤 나갔고, 만약 집사람이랑 진심으로 싸웠다면 분명 제가 납작해졌을 겁니다. 그래도 저나 아내나, 그때까진 아무리 화가 나도 아들에게 손이 올라간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근데 그 날은 아내의 인내심의 끈이 끊어졌고, 그간의 세월동안 쌓인 분노와 고통과 슬픔과 절망이 한번에 쏟아져나왔어요. 아내에게 맞은 아들은 목이 뒤로 휙 꺾이면서 코피가 뿜어져나왔습니다. 아들은 큰 반응 없이 그냥 아내를 충격받은 표정으로 바라봤어요. 방금 일어난 일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르는 듯이요. 아내는 또 1초간 지켜봤습니다. 그리곤 다시 쳤습니다.

제가 아내를 말릴 수 있었을겁니다. 아내를 방 밖으로 밀고나와 달랠 수도 있었겠죠. 근데 안 그랬습니다. 철저하게 펀치를 날려 아들을 곤죽으로 만드는 현장을 그냥 지켜봤습니다. 아들이 손바닥을 들어 한 부위를 막으면 아내는 다른 부위에 공격을 날랐습니다. 몸통, 머리, 몸통, 머리, 끝없이. 아들은 비명을 지르며, 악쓰며, 그만하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애가 뭔가에 이렇게 진심어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들의 온 생을 통틀어 처음 봤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멈추지 않았어요. 아내가 기세를 올려 더 세게, 빠르게, 샌드백 패듯 때리는 걸 전 그냥 지켜봤습니다. 아들도 반격하려 했지만 아내는 쉽게 피했죠. 아내는 수년의 복싱 연습을 기반으로 한 자동전투 모드였어요. 전 잠시간 지켜보다가 등을 돌려 딸아이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목욕시켰습니다. 그때 보니 벤 자국이 발바닥에 하나 더 있었습니다. 상처는 모두 겉피부만 베인 상처였습니다. 아이를 씻기고 안아서 진정될 때까지 얼렀습니다. 상처에 연고와 반창고를 발라줬습니다. 침실에선 여전히 아들이 비명지르며, 집사람을 끔찍한 단어로 부르며, 집사람의 목을 자른 다음에 그 시체와 떡치겠노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아들은 더이상은 말은커녕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기절했지 싶습니다. 근데 아내가 아들을 때리는 소리는 여전히 들렸습니다.

참 오래 걸렸습니다. 딸아이가 품 안에서 잠들 만큼 오래요. 전 그냥 부엌 의자에 앉아 아내가 끝장내길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아내가 나와 내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손이 발갛게 부어서요. 얼굴과 팔엔 피가 튀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죠. 우린 아무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한참 후에 전 아내한테 “죽었어?”라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날 보며 “죽었길 바라야지.”라 대답했고요. 난 고개를 끄덕였죠. 할 말은 그게 다였어요. 전 아내의 심정을 백프로 이해했습니다. 저도 똑같은 심정이었거든요. 이제 어찌해야 될질 모르겠어서, 우린 그냥 거기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그러다 아내가 울기 시작하면서 샤워하러 갔습니다. 전 그냥 그 자리에 딸아이를 안고 있었어요.

한참 후에, 우리 방에서 흐느낌과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들은 살아있었던 겁니다. 상태가 어떤지 보러 가봤더니… 상당히 나쁘더군요.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맞은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 코피와 토사물로 얼룩진 마루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코는 깨지다못해 납작해졌고, 눈이 양쪽 다 뜨지도 못할만큼 부어선 멍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두개는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었고 바지엔 오줌을 지려놨습니다. 이도 나간 거 같은데, 입술이 퉁퉁 부어서 입안을 볼 수 없으니 모르겠고요. 나중에 아내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온 몸을 철저히 깨부수는 데 전념하되 특히 다리에 집중했다는군요. 다리에 힘이 풀릴때까지 사타구니를 걷어찼고, 기절한 후에도 계속 때렸다고요.

아내가 사워실에서 나왔을 때도 전 여전히 아들앨 어찌해야 될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경찰을 불러야 될지, 구급차를 불러야 될지, 내가 직접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정말로 어찌해야 할지 감도 못 잡겠더군요.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전 이제 더이상 아들이 어찌되건 관심없다는 걸요. 그래서 죽든살든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습니다. 지하에 우리가 그닥 안 쓰는 객실이 있어서, 아내와 저는 딸아이를 데리고 그 방으로 이사갔습니다. 지상층은 아들애한테 내주고 모든 물건을 아래층으로 옮겨, 우리의 삶을 그 아이로부터 격리했습니다. 윗층 캐비넷에 음식이라면 2주 이상은 넉넉히 버틸만큼 있고, 욕실과 화장실도 있잖아요. 지하에도 욕실과 작은 부엌과, 윗층과는 따로 난 출입구가 있어서, 그냥 윗층에 가는 걸 멈췄습니다. 우린 아들애에게 할만큼 해줬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식량이 바닥나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했죠.

다음 주 내내, 아들이 윗층에서 돌아다니는 소리가 가끔 들렸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서 회복하는 데에 썼겠지 싶습니다. 저는 직장에 계속 다녔는데, 집을 나설 때 아들이 절 공격하진 않을까 엄청 주의를 기울였습니다만, 그러진 않더군요. 아내는 딸아이와 함께 집에 있었습니다. 절대 서로를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게 행동했죠. 어느날 밤 아들이 날뛰면서 물건을 부수고 두들겨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린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절대 아래층으로 내려오거나 우리한테 접근하지 않더군요. 아마 다시 가까이 왔다가 이번엔 진짜로 아내 손에 끝장날까봐 무서웠던 거 아닐까요. 지하실에서 3주를 지내니 윗층에선 며칠째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 저는 용기를 내어 윗층으로 올라가봤습니다.

집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고, 아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들은 사라졌습니다. 집을 수리하는 데에 몇개월이 걸렸지요. 음식과 대변이 모든 벽에 발려 스며들어 있었고, 합판 벽엔 커다란 구멍이 여러개에, 집을 아주 산산조각을 내놨습니다. 부엌 한구석은 방판을 뜯어놨고 거실엔 소화기 내용물을 다 풀어놨더군요. 아래층에 우리가 있을때 아들이 집에 불을 지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왜 안 그랬는지를 모르겠지만요. 방화에 아무 거리낌도 없는 애였으니까요. 이후, 아들이 돌아와서 우리를 난데없이 기습해 죽이려 들 거란 공포 속에서 살다가, 3년쯤 후에 이사하고서야 그 공포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들은 실종됐습니다. 드디어 아들로부터 안전해졌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건 매우 오래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들은 1971년 봄에 태어났고, 딸아이는 1988년에 태어났습니다. 전 이제 올해로 70세가 되는 노인이고, 아내는 2016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딸은 지금 31세로, 아내와 사별 후에 전 딸아이네 부부 집에 들어와 삽니다. 손녀가 두 명 있고, 이 아이들은 제 삶의 빛입니다. 한달에 두 번, 저는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이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피 철철 흘리며 우리 침실 마룻바닥에 누워있었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 소식이 끊긴채로 30년 넘게 흘렀습니다. 계속 소식이 끊겨있길 바라고요.

그 때 이후로 죄책감과, 여러 복잡한 심경을 많이 느낍니다. 제가 직접 두들겨팬 건 아니지만, 맞는 걸 방관했고,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된 게 반가웠습니다. 직접 죽이려들지 않았다 뿐이지, 아들이 죽었으면 기뻐했을 겁니다. 아들이 자기 안의 악마를 이겨내고 어딘가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지 못하고 여전히 그 상태라면, 저 밖의 누군가가 아들을 죽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가 아는 아들은 늘 광견병 걸린 개였고, 아들이 여전히 살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해치고 다니지 않았으면 합니다.

출처: 아내가 우리 아들을 반쯤 죽이는 현장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해줘서 기뻤어요.

이런 글 번역하기가 조심스럽긴 한데...
(실제로 태어날때부터 소위 '싸패'인 애보단,
학대부모가 지들이 애 감성발달을 잘못 시키는 건 생각 안하고
'애가 처음부터 문제 있었다'고 우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요.)
근데 제가 인간 뇌의 다양성에 관심이 많아서 못참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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